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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화산책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4-12-17 (화) 11:31 조회 : 98
<스포츠 살롱>

한국 팬도 오타니를 사랑하는 이유



2024년 9월 말, 미국 프로야구 최중심에는 ‘일본 선수’ 오타니 쇼헤이(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 소속, 1994년생)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오타니라는 선수에 대해서 한두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여 이 선수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선수’이며, ‘세계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놀랍지 않으시나요? 비인기 스포츠가 아니라 주요 인기 스포츠 종목에 있어서 아시아 선수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오타니라는 위대한 선수 이전, 세계 야구에 획을 그었던 또 한 명의 일본인 선수가 있었습니다. 혹시 누군지 아시나요? 살짝 마르고, 특유의 타격 루틴으로 매우 정교한 타격을 보여주었던 선수. 대한민국 야구팬들로서는 뼈아픈 패배(2009년 WBC대회 한국과의 결승전에서 결승타를 때림)를 안겨준 장본인. 바로 스즈키 이치로(1973년생)입니다. 그는 신인 시절부터 전성기에 접어드는 순간까지 일본에서 야구를 했고, 28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간 ‘중고 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만 3,000안타를 때려냈으니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치로는 2019년에 은퇴를 했죠.



그런데 최근 오타니의 활약을 지켜보는 저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이치로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치로가 아무리 활약해도 그는 정이 잘 가지가 않았거든요. 아마도 이치로가 일본 선수이기 때문에, 한국인들 특유의 일본인 선수에 대한 ‘후하지 않은 마음’도 작용했을 겁니다. 물론 이치로가 경이적인 실력을 꾸준히 보여주며 ‘장인(匠人)’의 모습을 보여주자 저의 마음도 살짝 움직이긴 했지만, 그가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도 한 명의 스포츠 팬으로서 마음을 온전히 주지는 못했습니다.



오타니를 보는 저의 마음은 다릅니다.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지금보다 조금만 더 분발해서 미국 선수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 다치지 말고 계속해서 활약하면 좋겠다는 마음. 마치 한국인 선수를 보며 응원했던 것처럼, 오타니를 응원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된 겁니다. 대체 이치로를 향한 마음과 오타니를 향한 마음은 왜 그리도 다른 걸까요?



저는 현역 시절 이치로를 보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방망이 깎는 노인>(1974년 발표된 윤오영의 수필)을 연상하곤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것을 두고 고집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답답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조금 불친절하다고도 해도 기어코 철학을 굽히지 않고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장인. 그가 바로 방망이 깎는 노인인데, 저는 어째 이치로를 볼 때마다 ‘방망이 깎는 노인’을 떠올렸다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방망이 깎는 노인’을 보면서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의 실력과 집념을 인정하더라도 인간적인 호감을 주기엔 쉽지 않은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오나티를 보면 어릴 적 보았던 야구 만화에 등장하는 ‘해맑은 주인공’이 떠오릅니다. 인사도 잘하고 야구도 성실히, 게다가 잘 해내는 소년. 이런 소년을 사랑하지 않을 재간은 없습니다. 실제로 오타니는 그라운드에서 어두운 기운이 아니라 밝은 기운을 뿜어냅니다. 격렬한 스포츠 전장에서 상대 팀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는 편입니다. 스캔들 같은 거 없이 ‘야구라는 한 우물’을 정석대로 판다는 걸 팬들이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선수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요?



실력이 아주 뛰어난 스포츠 스타들을 ‘호감형’과 ‘비호감형’으로 나누었을 때 그것을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 중 하나는 ‘특유의 승부욕이 어떻게 표출되는가’에 있습니다. 어떤 선수들은 특유의 승부욕이 지나치게 거친 플레이로 나오거나, 이기적인 플레이로 나타나거나, 잦은 분노로 드러납니다. 이런 선수들은 ‘비호감형’ 스포츠 스타가 됩니다. 어떤 선수들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선을 지키는 플레이를 합니다. 이타적인 플레이를 합니다. 극도로 분노가 나는 순간에도 적절히 자신의 감정을 절제합니다. 이런 선수들은 ‘호감형’ 스포츠 스타가 됩니다. 그렇다고 ‘비호감형’ 스타에 이치로를 집어넣고 싶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오타니는 ‘호감형 선수’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일본인 선수로서는 유례없이 한국 야구팬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고 있다는 말입니다.



기왕 야구를 업(業)으로 삼고 살아가는 거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뛸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한 일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타니는 행복한 선수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또한 그가 뿌린 씨앗이라는 점에서 그는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랑을 누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끔 질문해 봅니다. 내가 오타니처럼 야구를 잘한다면 오타니처럼 겸손할 수 있을까? 저는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그래서 오타니에게 묻고 싶기도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리도 겸손하게 성실하게 야구에 전념하고 있는 겁니까? 비결이 뭔가요?”



소재웅 작가 (『전자슈터 김현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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