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지나면 으레 해가 뜨고, 새가 울고, 하늘에는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바람도 일고, 그렇게 여느 날처럼 강물이 흘러가지만 어려운 일을 만나면 이러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기에 어차피 비교할 길은 없습니다. 매 순간 결단하며 닥치는 삶을 살아내는 중입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주위에 나와 비슷한 이웃들이 보이고, 앞선 어른들의 자취가 여러 모양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2020년 봄을 맞아 그동안 세워놓은 일들을 위해 우리 부부는 한 달여 기간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먼저 대구로 가 희망찬 V.W.I.-KR. 창립 예배를 드렸고, 이어 경기도에 있는 중 고등학교에서 ‘경쟁과 부르심’이란 제목으로 여덟 시간씩 이틀에 걸쳐 나누었습니다. 한 초등학교 학생들과는 ‘하늘은 이미 내 안에 살아’로 그리고 청년들과는 ‘사진에도 길이 있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른들과 ‘4차산업과 예술로의 선교전략’이라는 주제로 모였습니다. 함께 온 아내는 저의 일정과 별도로 예정된 사진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수년간 세계 곳곳에서 모인 선교사들과 준비한 아름다운 사진들이 전시현장으로 속속 모였습니다. ‘토브와 바라크의 아름다움’으로 전시주제를 정하고 전시장에 맞는 크기로 사진 인화도 맡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대장과 포스터를 막 돌리려는데…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 곳곳에서 폭탄처럼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전시를 연기하고 다음 날 아내와 저는 인천공항으로 무작정 가서 아내부터 출국 시켰습니다. 저는 유럽 국가들의 눈치를 보며 며칠 더 담당하고 있는 일을 진척시키고 독일을 통해 겨우 불가리아 현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코로나19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팬데믹(pandemic) 상태로 진행되고 아내가 서둘러 들어간 항공편은 이미 끊겼습니다. 만약 한 주전 아내가 전시중단을 결단하고 서두르지 않았다면 난감했을 일입니다.
먼저 도착한 아내에게 혼자 겪은 날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입국심사에서부터 아내는 잔뜩 겁을 먹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염려로 교회 식구들을 직접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동양인을 피한다는 현지인들의 태도와 과장되게 전달된 갖가지 사태의 선입견 때문에 아내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식자재와 생활용품은 한 가지 두 가지 떨어지고… 외국인 틈에 홀로 갇힌 이방인으로서 겪는 불안 앞에 위로할 대상과 길을 찾지 못하던 차에 제가 도착한 것입니다. 아내의 얘기를 듣고 저도 무기력을 느꼈습니다. 가족과 부부의 역할에 대한 아내의 주장에 가장으로서 할 말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코로나19로 파생되는 유럽의 상태는 더 위중해집니다. 매달 예정된 저의 프랑크푸르트 강의와 미국 대학으로부터 초청받은 인텐시브 강좌도 미 정부 행정조치로 막연히 미루어졌습니다. ‘Hong Kong Visual Art Center’ 초대전도 11월로 바뀌었습니다. 거기에 두바이서 일하는 큰아들이 미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막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편리한 삶을 위해 스마트하게 전개되었던 세상의 일들이 속절없이 흔들립니다. 역사의 회오리바람에 휘둘리고 있는 내가 느껴지며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한 세기 전 고국을 회상하며 이미륵 님이 독일에서 출판한 책 ‘압록강은 흐른다’입니다.
당시 자신의 어린 외아들을 서양학교에 내맡겨야 했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묻고 대답합니다. “학교의 모든 게 아주 낯설었어요. 오랫동안 무섭기도 했어요. 학교가 제 마음에 안 들 것 같아요. 이제까지 제가 익숙해 있던 것과는 모든 게 너무 달라서 그런가 봐요.” / 아버지는 오랫동안 잠자코 계셨다. / “그래서 힘들더냐?” / 아버지는 한참 뒤에야 물으셨다. / “그런 것 같아요. 옛날에 집에 있던 서당이 생각났어요.” / “내 곁으로 가까이 오너라.” / 아버지는 내 손을 끌어당기셨다. / “너 아직 소동파의 시를 외고 있을 테지?” / 내가 작년에 배웠던, 소동파 시인이 배를 타고 가며 지었던 시였다. / “한번 읊어 봐라.” / 나는 막히지 않고 한번에 읊었다. / “너 영탄가를 읊을 수 있니?” / 나는 그것도 쉽게 해냈다. 오십 절이 끝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어때, 이젠 네 마음이 좀 진정되었니?” / 아버지가 물으셨다. /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내 이부자리로 돌아갔다. / “내일 또 학교에 갈 거냐?” / “네, 아버지가 원하신다면…”
전 여기서 울컥 가슴에 뜨거운 기운이 올라옵니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에서는 잠언과 전도서가 그렇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앞에 나라와 세계조직은 개인의 존재를 전체 앞에 무지막지하게 복속시킵니다. 질서와 상식이 무너집니다. 그동안 민주주의 체계 아래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도록 세상이 스마트하게 발전하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전체의 이익 앞에 개인은 속절없이 휘둘리며 소멸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본능이 논리보다 앞섭니다. 스마트한 생활의 끝이 비쳐 보입니다. 허망하지만 이 일이 현실입니다.
주님! 한 줌의 힘도 변명거리도 없이 주님 앞에 대책 없이 서 있습니다. 지금 주님 외엔 의논할 대상이 없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주님에게 있고 이것이 삶의 성숙을 이뤄낸다는, 즉 이 난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와 복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언약이 더욱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긍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함철훈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