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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6-04 (화) 16:12 조회 : 1483
너희 생각은 어때?

‘당신 생각은 어때?’ 간간이 ‘생각’을 묻는 아내를 마주합니다. 빵집을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고민 깊은 마음을 보이는 거지요. 선뜻 제 생각을 내놓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까닭에, 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 선택한 ‘침묵’입니다. 보채는 법이 없는 아내는 더 캐묻지 않고 그냥 넘어가 줍니다. 답답하다거나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을 텐데, 아내는 내색이 없습니다. 남편의 대답이 매장 운영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어쩌다 한 번 툭 내놓은 남편 대답은 가게 문 닫는 데나 쓸모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더라도 ‘생각’을 물어주는 아내가 고맙습니다. 바라는 대답을 내주지 못하는 미안함도 크고요. 매장 운영과 관련해서는 그야말로 ‘일(1)’도 모르는 사람이 그와 관련한 ‘생각’을 한두 번씩 해 보기도 하니, 나름의 배움이 되기도 하더랍니다. 그 배움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겠는데, 하나둘씩 더 배워 가다 보면 목회 그만두고 빵집 사장으로 전향할까 싶은 우려가 깊어 더 많이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아, 물론 농담입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의 ‘생각’이 궁금하셨던가요.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마태복음 18장 12절)?” 물으신 걸 보니 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답니다. 그중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지요. 실제 그런 사람-그런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가르침을 위해 예수께서 설정한 상황이겠지요. 상황 세팅이 끝나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 생각은 어때?” 물으셨으면 대답을 기다려야 하겠는데, 뭐 그리 급하셨던지 당신이 대답까지 대신하십니다.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막내 아이가 묻습니다. “아빠. 산이가 더 이뻐, 내 친구 강이가 더 이뻐?” 아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제 입으로 대답을 서두릅니다. “산이가 더 이쁘지?” ‘당연함’에 대한 물음/대답의 방식입니다. 예수의 질문에는 ‘지극히 당연한 대답’이 이미 들어있었던 겁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천국에서 누가 큰가?’가 정돈됩니다. ‘어린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더랍니다. 그러므로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큰일이 난다는 겁니다. 아흔아홉을 두고 하나를 찾아 나선 ‘당연함’의 까닭입니다. 제자들의 ‘생각’을 묻는 예수님의 물음에는 ‘작은 자’를 대하는 방식의 어떠함이 들어 있었던 거지요. ‘왜 날 안 찾아?’ 고함치고 내 달리는 ‘큰 자’가 아니라, 길을 잃고도 찍소리 못하는 ‘작은 자’를 대하는 방식 말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마태복음 18장 13절).” 하심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태복음 18장 14절).” 하신 말씀 속에서도 ‘너희 생각’을 묻는 ‘주님의 대답’이 또렷해 보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저 옛날 물음이 고스란히 우리 앞에 놓입니다. “너희 생각은 어때?” 그때와 같이, 대답은 기다림 없이 주님의 입에서 떨어질 겁니다. 그건 물으나 마나 지극히 당연한 ‘대답’이니까요. 다만, 그제나 이제나 주님의 대답에 어리둥절 하는 우리의 모습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고 ‘따른다’ 하지만, 실은 예수께서 당연하게 여기신 것을 우리가 당연히 여기지 못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작은 자’가 아니라 ‘큰 자’에 있는 까닭입니다.

 ‘목회’를 일삼아 여러 해 지내다 보니, 예수님 말씀을 적잖이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아니라 ‘고약한 말씀’으로 알아듣고 속상해하는. ‘너희 생각’을 묻는 예수님에게 서둘러 ‘다른 생각’을 좀 내놓고 싶은 걸까요. ‘진실로’ 이르셨던 예수님의 한 말씀을 엄히 받아 새겨 두어야겠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장 3절).” ‘돌이켜’ 작은 자 되어, ‘결단코’ 천국에 이르러야겠습니다.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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