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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4-29 (월) 13:07 조회 : 1534

소비주의 복음?


“경마장에서 말을 잃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질주하는 말이 아닌 손에 쥔 마권입니다. 이 마권은 소비와 욕망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짧은 경주가 끝나기 전 환희와 흥분 그리고 극도의 쾌락을 선물해줍니다. 물론 경주가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허무함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소비주의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소비한다
데카르트의 명언을 비틀어 접하게 되는 소비의 철학은 우리를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또는 상대적인 성취감으로 이끕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현대인들은 소비에 열광하게 됩니다. 생각해보건대 아이폰신형과 구형 간의 간극은 오늘날 사람의 능력을 대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소비의 능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결정적으로 이러한 일시적인 성취감과 즐거움은 우리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심어줍니다. “나는 당신과는 다르다”라는 이미지입니다.

2.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른 것을 소비한다.
오늘날 우리는 필요 품목에 대하여 특별한 상징성을 요구합니다. 나 자신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지표말이죠. 나 자신을 대변하여 줄 수 있는 이상적인 물건을 찾아 우리는 소비하게 됩니다. 무엇이 되었건 실용성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두 가지 소비주의의 관점이 오늘날 교회 안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는 크게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복음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며, 나를 위한 특권의식과 상징성과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하여 소비되는 복음은 결국 교회를 찾아다니고 그럴듯한 내 생각에 맞는 또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설교를 하는 설교자를 찾아다니게 만듭니다.


타인과 자기 자신을 나란히 놓고 이상한 평가를 한 다음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점수에 따라 자기자신의 우위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비주의가 교회에도 고스란히 녹아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취향에 맞는 서적, 음악, 교회, 목사, 방송사 이외에 각종 기독교의 심벌을 나타내는 액세서리 같은 것들 말이죠. 자기 자신의 신앙을 위함인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한 가지 성경적 진리는 복음은 소비될 수 없으며,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여 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 구미에 맞추어 소비하는 복음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면서 인생을 소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세속에서의 소비는 일시적이고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의 우월성이거나 계속하여 무엇인가 소비하는 패턴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참으로 갈증 나는 소비패턴일 뿐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절대로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내가 주는 물은 그에게 끊임없이 솟구쳐나오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이 될 것이다(요한복음 4장 14절).” 물이라는 단어를 소비라는 단어로 바꾸어 보면 이는 참 재미난 말씀이 됩니다. 어차피 소비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로서 예수님과 함께 삶 그 자체를 소비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소비 중에 인생을 소비하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없는 듯합니다. 하물며 그 즐거움을 예수님과 같이 한다면? 이는 갈증 없는 최고의 소비가 될 것이 분명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비합니다.”
크리스천이 크리스천답게 소비하는 삶은 예수님을 소비하는 것 아닐까요? 무제한 한도 카드를 발급받은
사람처럼 맘껏 긁으면서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삶을 소비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진철 선교사 (Cebu mission land,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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