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한국의 벚꽃동산
우리나라의 대표 대극장인 LG아트센터는 2000년 개관 이후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왔습니다.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2000년)와 <웰컴 투 동막골>(2002년)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호응을 얻었으며, 양정웅 연출의 <페르 귄트> (2008년 초연),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 <억척가>(2009년 초연)와 서재형 연출의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2011년 초연)는 국내 관객들의 호응을 넘어 해외로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2년, 강남 한복판인 역삼동에서 마곡나루로 옮겨간 이후 자신만의 색깔을 더 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관객들에게 선보일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세계적인 연출가와의 신작 제작을 계획했는데,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연출가 사이먼 스톤의 연극 <벚꽃동산>입니다.
이번 <벚꽃동산>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사이먼 스톤은 영국 내셔널시어터,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등 세계 최고의 무대를 오가며 작품을 올리고 있는, 현재 가장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연출가입니다. 특히 연극 ‘메디아’, ‘예르마’, ‘입센 하우스’ 그리고 영화 ‘나의 딸(원작: 입센의 ‘들오리’)’ 등의 작품을 통해 고전을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선보여 왔습니다. 사이먼 스톤은 2022년 한국에서 리서치 기간을 갖고 <벚꽃동산>에 대한 구상을 마쳤으며, 2024년 1월, 10명의 배우들과 함께한 일주일의 워크숍에서 캐릭터의 밑그림을 그려 나갔습니다.
그는 200여 편 이상의 한국 영화를 관람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한국 문화의 팬이기도 하여 이번 작품에 스크린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스크린과 방송에서 활약한 전도연, 박해수 배우 뿐 아니라, 무대와 매체를 종횡무진하는 손상규, 최희서, 이지혜, 남윤호, 유병훈, 박유림, 이세준, 이주원 등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10명의 배우들이 30회의 공연 기간 동안 ‘원 캐스트’로 출연합니다.
<벚꽃동산>은 위대한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유작이자, 연극계의 오랜 고전입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해외의 연출가가 고전의 틀을 깨고 우리의 이야기로 새롭게 탄생시킨 점이 재미있습니다. 이야기는 십여 년 전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났던 송도영(전도연 분)이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그녀가 마주한 서울은 자신의 기억과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습니다. 떠들썩한 사회 분위기, 자유롭고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무엇보다 그녀의 가족들이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즉, 2024년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원작의 캐릭터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이름이 모든 배우들에게 부여되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이먼 스톤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 <벚꽃동산>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한국 배우들은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며 연기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서 “체홉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희비극성을 한국 배우들의 놀라운 재능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벚꽃동산>은 항상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한국 사회를 담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무대 디자인은 기하학적 디자인을 선보여 온 건축 디자이너 사울 킴(Saul Kim)이,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은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장영규 음악감독이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전으로 만났던 작품을 현재, 한국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로 그려내어 우리의 마음에 와 닿는, ‘지금 여기’ 한국의 <벚꽃동산>으로 펼쳐낼 수 있을지 특히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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