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살고 싶잖아요
요즘 아이들의 장래 희망 순위에는 부모님 세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업이 있는데요. 무엇일까요? 지난해 교육청과 한국 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2023 진로 교육 현황조사’에 따르면 1위는 운동선수, 2위는 의사, 3위는 교사였습니다. 여기까지는 부모님 세대에서도 볼 수 있는 장래 희망인데요. 4위가 조금 생소합니다. 바로 ‘창작자(크리에이터)’입니다. 쉽게 말해 유튜버가 장래 희망인 것. 그리고 많은 아이가 모델이나 가수,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가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명해지는 것이 과연 좋은 걸까요? 세상 사람들이 유명한 나를 좋아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우쭐거리고 싶네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죠. 내가 당하는 엄청난 수치를 세상 사람들도 다 알게 된다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책 『살아있길 잘했어』의 저자는 1980년에 광고 모델로 데뷔한 서정희입니다. 온 국민이 다 알도록 수치스러움 끝에 이혼하고, 다시 숨을 고른 뒤 살아 볼까 할 때 찾아온 유방암. 오른쪽 가슴 전절제 수술 후 불을 먹은 듯 항암 부작용으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사람들은 “이제 서정희는 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살려 주시는 힘으로 이제 다시 살아, “살아있길 잘했어”의 날을 살고 있습니다. ‘살게 해 주세요’의 시간을 견뎌 내 마침내 존재의 기쁨을 말하는 아주 밀도 있는 에세이 『살아있길 잘했어』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자신의 아픔에 예쁜 옷을 입힌 글들로 대신했습니다. 이 책은 ‘나는 이제 끝이다. 다시 일어설 힘이 없다, 희망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살아만 있으세요. 조금만 더 견디면 ‘살아 있길 잘했어’라고 할 날이 곧 올 거예요”라고 격려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넌 이제 끝났어”라고 말합니다.
나 역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끝난 뒤에도 삶은 계속되더라고요.
끝난 뒤에도 분명 시작이 있더라고요.
물론 모든 순간이 성공은 아니죠.
잘못한 일도 많고, 실패도 있어요.
인생이 두려울 때도 있어요.
그래도 누구나 살고 싶지 않나요?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난 살고 싶습니다.
아주 잘.
매 순간 감사하면서요.
-52p 중에서
딸 서동주는 엄마의 글을 이렇게 추천합니다. “요즘 엄마의 글에는 비 온 뒤 흙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땅의 온기가 있다. 읽고 있으면 마음이 촉촉해지고 유연해진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며 엄마는 단단해졌을까. 아니, 오히려 더 말랑해졌다. 엄마, 살아있길 잘했어요.”
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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