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오후의 초원. 풀은 얼룩말이 무섭습니다. 어느샌가 다가와서 새로 자라나는 잎사귀들을 사정없이 먹어치우니까요. 하지만 풀을 뜯던 얼룩말은 부스럭,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듭니다. 얼룩말은 사자가 무서우니까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세계. 정글입니다.
한가로운 오후의 사무실. 신입사원은 대리님이 무섭습니다. 어느샌가 다가와서 빈 모니터를 흘겨보고 가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신입사원을 꾸중하던 대리는 누군가의 헛기침에 화들짝 놀랍니다. 대리는 팀장이 무서우니까요. 자르고 잘리는 냉정한 세계, 여기도 정글입니다.
식품회사 “정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된 전직 높이뛰기 선수 동희. 선배들은 동희를 ‘핏댕이’라 부르며 정신없이 굴리고, 그 와중에 사장 아들은 아프리카산 애벌레를 신규 아이템으로 들고 상무로 부임해 옵니다. 아무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애벌레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낙점된 동희는 신입사원의 패기와 사무실 미화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애벌레 프로젝트를 열심히 추진해 갑니다.
하지만 기존에 사무실의 패권을 쥐고 있던 부장과 낙하산 상무가 대립하는 가운데 직원들은 패가 갈리고, 서로를 몰아내기 위해 애벌레 프로젝트를 실패시키려 하면서 동희는 얼떨결에 사무실 내 전쟁의 한가운데 서게 되지요. 그러던 어느 날, 거액의 지원금이 투입되는 정부의 미래식량 개발 계획에 애벌레가 포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데...... 과연 ‘동희’는<애벌레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이 정글 같은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뮤지컬 <정글라이프>는 ‘직장생활’이라는 공감되는 소재를 세련되게 구성하여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3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작품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초연 후 재공연이 결정되었습니다. 세련된 음악과 무대연출도 좋지만, 특히 캐릭터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호랑이같은 홍호란 부장, 사자같은 오레오 상무, 원숭이같은 이원순 사원, 사슴같은 사수미과장, 하이에나같은 하예나 대리... 이름마저도 정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 작품을 보다보면, 잦은 회식과 야근, 회의, 실적, 게다가 상사의 눈칫밥까지, 월급쟁이의 삶은 어쩌면 빌딩 숲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정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력파 배우들이 꾸미는 창작뮤지컬이라 더 기대가 큽니다. 오레오 상무와 피 튀기는 신경전을 벌이게 될 홍호란 역은 뮤지컬<더 씽 어바웃 맨>에서 1인 14역을 선보이며 제15회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실력파 배우 김경선이 맡았습니다. 여기에 뮤지컬 <렌트>,<광화문연가2>,<헤드윅>,<벽을 뚫는 남자>등에서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 조진아가 합류하여 능청스럽고도 마음 따뜻한 청소아주머니 김미화 역을 연기합니다.
‘오레오’ 상무 역에는 뮤지컬 <빨래>,<여신님이 보고 계셔>,<카르멘>,<형제는 용감했다>등에서 탄탄한 실력을 보여주며 다수의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이준혁이, 또한 뮤지컬 <김종욱 찾기>,<남자가 사랑할 때>,<총각네 야채가게>로 꾸준히 실력을 쌓아온 그룹 LPG의 전 멤버 한수연이 ‘하예나’ 역에 각각 더블 캐스팅되어 그들만의 색깔 있는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시집살이보다 더 무서운 사무실살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고싶은 일을 한다해도 아침 출근길 발걸음이 늘 가벼운 건 아닙니다. 어쩌면 일보다 관계에 파묻혀버리는 일상이 반복되니까요. 뮤지컬 <정글라이프>를 보다가 ‘맞아, 정말 저래’ ‘완전 내모습이네’ 혹은 ‘우리 팀장이랑 똑같네’라고 느끼는 지점들이 있다면, 당신도 정글속의 초식동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정글에도 영원한 약육강식은 없지요. 결국 살아남는 것은 ‘강함’ 만은 아닙니다. 정글이 지친다면, 잠시 정글 밖으로 나가 우리가 있던 곳을 한번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글같은 일상에서 잠시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며 그래도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INFO
일시 : 2014년 2월 7일 (금) ~ 3월 30일 (주일) 화 - 금 8시 / 토 3시, 6시30분 / 주일 4시 (※월 공연없음) 장소 : KT&G 상상아트홀 티켓 : 전석 5만원 연출 : 신유청 작 : 조민형 음악 : 이현섭 출연 : 김경선, 조진아, 이든, 고현경, 박태성, 이준혁, 이시유, 한수연, 이미경, 장우수, 박정원 제작 : 와뮤지컬그라운드 문의 : 플레이몽예술기획 02-3142-2461